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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바리사자(barbary lion)
위 사진의 우람한 갈기를 가지고 있는 사자가 북아프리카의 맹주 바바리사자.
바바리사자는 본래 사하라 이북 지역의 아틀라스 산맥과 바바리 해변 일대에 넓게 서식하던 종이었다.
문명의 발달이 느렸던 사하라 이남지역과 달리 북아프리카 일대는 여러 문명들이 발달하고 서루 부딪치던 곳이었는데, 그래서 바바리사자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많은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로마시대의 것으로 당시 로마인들은 콜로세움에서 바바리사자와 검투사들의 대결을 즐겼다고한다.
콜로세움에서 처형된 기독교인들을 잡아먹던 사자도 이 바바리 사자들로 추정됨.
게다가 중세시대 영국에서는 바바리사자들을 매내져리(menagerie)라는 일종의 동물원에서 전시되는 등 유럽지역에선 이전부터 친숙했던 종.
바바리사자가 다른 사자들과 비교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저 우람한 갈기다.
사하라 이남에서 서식하는 사자들에 비해 수컷 바바리사자의 갈기는 색도 진하고 갈기에 뒤덮힌 부분도 매우 넓음.
바바리사자의 갈기는 목 뿐만 아니라 숫사자의 어깨 전체 그리고 배 아래까지 이어져 숫사자를 보다 위엄있게 보이게 해준다.
바바리사자들에게 이렇듯 풍성한 갈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아틀라스산맥의 기후 때문인데, 연구결과 숫사자의 갈기의 크기는 서식지의 기후와 연관이 깊다고 한다.
비교적 온도가 높은 지역에 서식하는 사하라 이남의 숫사자들은 색도 연하고 보다 작은 갈기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보다 차가운 기후의 아틀라스 산맥 일대의 바바리사자들은 낮은 온도 속에서 저런 큰 갈기를 진화시켜 온것.
하지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사자들은 지금은 야생에서 볼 수 없다.
19세기 중반부터 주 서식지인 아틀라스 산맥 일대에 인간들이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바바리사자들의 서식지는 급감하기 시작했고 풍성한 갈기 덕분에 사냥감으로도 인기있던 바바라사자들에 대한 밀렵이 성행했었다.
게다가 바바리사자들은 종종 가축들도 사냥해 주민들과의 갈등도 심했다.
결국 1942년 마지막 야생 바바리사자가 북아프리카의 머그레브(Maghreb)지역에서 사살당했음.
마지막 야생 바바리사자의 죽음 이후 바바리사자들은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드라마같은 반전이 나타났다.
바로 바바리사자들의 후손들이 유럽과 미국 일대의 동물원들에 퍼져있던 것.
동물원의 사자들에 대한 유전자 검식결과 2006년 독일의 Neuwied 동물원에서 바바리사자의 후손으로 확실시되는 사자가 발견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노력으로 꽤 많은 바바리사자들의 후손들을 찾아내 바바리사자의 부활 가능성은 높아졌다.
현재는 바바리사자 프로젝트(The Barbary Lion Project)라는 바바리사자 복원 계획이 미국과 유럽의 동물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있다.
이 계획이 성공해 개체수가 다시 늘어난다면 아틀라스 산맥을 호령하던 거대한 바바리사자들을 다시 볼 수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2. 스텔러 해우
위 그림의 동물들은 고래들을 제외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포유류인 스텔러 해우.
이 거대하면서도 우아한 동물들은 1741년 북태평양에서 스텔러라는 모험가에의해 발견된 이후 27년 만에 멸종해 버린 정말 안타까운 동물이다.
스텔러 해우들은 가까운 친척관계인 매터니와 듀공들과 같이 초식성의 온순하 동물들로, 18세기 모험가들에 의해 발견된 이후 유럽 선원들의 무차별적 학살에 견디지 못하고 27년 만에 멸종해 벼렸다.
스텔러 해우들은 정말 거대한 몸집을 가진 동물들이였다.
남겨진 뼈들에 따르면 다 큰 스텔러 해우들은 최소 8~9m 정도의 길이에 몸무게만 8~10톤에 달하는 대형고래들은 제외하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거대한 포유동물에 속하는 동물들이었다.
이 동물들은 신생대까지만해도 북태평양 연안의 넓은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지만, 빙하기 이후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급격한 기후 변화로 알래스카 인근의 차가운 바다로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살아남은 스텔러 해우들은 인류에게 발견되기 전 까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스텔러 해우들은 매우 느리고 유순한 동물들로 알래스카 인근에 서식하던 스텔러 바다소들은 차가운 물 속을 느리게 이동하면서 바닷 속의 해초를 주식으로 삼았다.
덩치가 큰 만큼 먹는 양도 매우 많아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물 속에서 먹이를 구하는데 보냈다고 함.
이 동물들은 거대한 몸통에 비해 작은 앞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앞발은 물 속을 걸어다닌 데는 물론 짝짓기 상대방과의 결투를 위해서도 쓰였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이 거대하고 온순한 동물들의 멸종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스텔러 해우의 고기는 아몬드 향의 매우 좋은 맛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질 좋은 고기를 얻기위해 유럽 선원들은 스텔러 해우들을 남획하기 시작한다.
스텔러 해우들은 물 속에서 이동하는 속도가 매우 느려 손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고, 한 개체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경우 다른 해우들이 상처입은 해우들은 감싸안고 보호하는 행동을 보였는데, 이런 이타적인 행동 덕분에 유럽 선원들은 안그래도 느려터진 이 거대한 해우들을 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결국 이 거대하고 우아한 동물들은 결국 남획에 견디지 못하고 1768년에 멸종되고 말았다.
3. 카스피 호랑이(Caspian tiger)
위 사진의 거대한 호랑이가 1970년대 이후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스피 호랑이다.
카스피 호랑이들은 최대 몸길이 2.7m의 거대한 호랑이로, 멸종되기 이전에는 터키에서 중국 서부지역까지의 산림지대에 주로 서식하고 있었다.
당시 카스피 호랑이들은 중동지역의 최대 포식자로 숲 속에서 멧돼지나 박트리아 사슴 등 대형 포유동물들을 주식으로 삼아 생활했다고 함.
카스피 호랑이들이 다른 호랑이들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털가죽인데, 이 호랑이들은 동쪽에 서식하던 친척들에 비해 줄무늬의 폭이 좁고 줄무늬들간의 간격이 비교적 좁은 편이었다.
또한 다른 호랑이들과 달리 여름과 겨울털이 명확히 구분되었다고 함.
겨울털의 경우 색이 옅고 줄무늬도 다른 호랑이들과 크게 구분되지 않았지만, 여름털의 경우 벵갈호랑이 정도로 짧은 털길이에 줄무늬도 보다 좁고 길며 좁은 간격을 가지고 있다는점이 다른 호랑이들과 구분이 명확해졌음.
중동지역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오던 카스피호랑이였지만 인간의 영역이 확대되는데는 저항하기 힘들었다.
이 지역의 인구가 늘고 총의 보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카스피호랑이에 대한 밀렵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종종 가축들도 사냥해가는 카스피호랑이들은 지역주민들에게 눈엣가시였던거임.
결국 1950년대가 지나가면서 러시아,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카스피호랑이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터키의 경우 비교적 최근까지 카스피호랑이들이 생존했던 것으로 파악되고있다.
이 지역에는 비교적 많은 개체소가 살아남아 1980년대 중반까지 매해 1~8마리 정도의 호랑이들이 사냥되었다는 기록도 있었지만, 1990년대 초반 이후 더 이상 카스피호랑이들이 생존해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고 있음.
4. 오록스(Aurochs)
위 사진의 거대한 뿔을 가진 소가 오록스다.
오록스는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까지 넓게 서식하던 대형 우제류로 화석증거상으로는 한반도에도 서식했다고 함.
최대 몸길이 3m, 최대 몸무게 1.5톤의 거대한 동물로 현재 가축화된 소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동물임.
오록스는 2백만년 전에 인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수백만 년 동안 유라시아 전역은 물론 북아프리카 까지 서식지를 넓히면서 신생대에는 오록스의 전성기가 시작됨.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오록스는 멸종했고 기원전 4천년 이후에는 유럽지역의 오록스들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위 사진은 오록스의 형태를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는 소(Hex cattle).
오록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위 사진의 소와같은 굵은 뿔인데, 오록스의 뿔은 최대 80cm 까지 자라고 지름만해도 20~3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이런 굵고 긴 뿔을 지탱하기 위해 오록스는 현생 소들에 비해 보다 넓은 두개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야생의 종이다보니 가축화된 소들에 비해 긴 다리와 날렵한 어깨를 가지고 있고, 목의 근육도 현생소들에 비해 강력한 편임.
오록스와 인간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길다.
위 사진은 프랑스의 쇼베 동굴에 신석기인들이 그린 벽화로 신석기인들은 오록스를 주요 사냥감 중 하나로 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단순히 사냥감으로 여겨지던 오록스들은 기원전 10,000~8,000 년 사이에 인도지방에서 최초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다른 유라시아 지역과 유럽 등지에서도 오록스의 가축화가 이루어졌고, 기원전 3천년 전 쯤에는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오록스가 가축으로 이용된 것으로 여겨짐.
이런 가축화는 비교적 소수의 오록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구결과 유라시아 오록스의 가축화된 후손인 taurine cattle의 경우 모든 소가 80마리의 오록스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오록스의 가축화가 진행되면서 오록스의 후손들은 전 세계에서 번성했지만, 정작 야생의 오록스들은 가축화가 시작된 이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의 경우 오록스에 대한 지나친 사냥, 가축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기원전 4000년 전에 오록스들이 전멸했다.
오록스들의 마지막 서식지였던 유럽의 경우도 오록스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13세기 무렵에는 폴란드, 동프러시아 등 동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야생 오록스가 남아있었다.
오록스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동유럽 왕조들은 왕의 혈족들에게만 오록스 사냥을 허가하는 등 뒤늦은 보호방안을 마련햇다.
하지만 이미 오록스의 개체수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감소한 이후였던 데다가 귀족들에 의한 사냥이 계속 이어지면서 1627년 폴란드의 숲 속에서 마지막 오록스가 쓰러진 이후 더 이상의 살아있는 오록스를 볼 수 없어졌다.
최근에는 오록스의 부활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있다.
유럽이나 인도 등지에는 조상인 오록스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소들이 꽤 생존해 있는데, 이런 소들을 모으고 인위적으로 교배시켜 조상인 오록스와 비슷한 소들을 만들어냈음.
위 사진의 소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은 독일의 헤크 형제에 의해 복원되었다 하여 헤크소(heck cattle)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런 헤크소들은 오록스와 생김새 면에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크기는 오록스에 비해 조금 더 작다고 함.
5. 큰바다오리(great auk)
위 사진의 새는 원조 펭귄인 큰바다오리.
큰바다오리는 과거 북대서양 해변에 수백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남획으로 인해 1844년 6월 3일 마지막 큰바다오리들이 사냥당하면서 멸종해버렸다.
큰바다오리는 날지못하는 조류로 몸길이는 75~85cm까지 자라 바다오리과에서는 가장 큰 새였다고 함.
위 박제를 보면 생김새가 펭귄과 매우 유사한게 보인다.
원래 펭귄이란 단어는 웨일스인들이 이 새를 지칭하는 말이였다.
하지만 큰바다오리가 멸종하고 남반구에서 이 새와 비슷한 다른 날지못하는 새들이 발견되면서, 현재의 펭귄들에게 이름을 뺐겨버렸다.
종래 큰바다오리는 유럽 북부와 그린란드, 북아메리카의 해안 까지 북대서양 대부분의 해양에서 보이던 동물이다.
큰바다오리는 바다 생활에 적응하면서 비행능력을 포기하고 수영능력을 극대화시켰다.
보통 수심76m까지 잠수해 먹이를 구했지만 신체구조상 수심 1,000m까지 잠수 할 수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한번의 호흡으로 15분간 잠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다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완전한 바다생물인 돌고래도 대략 10분 내외로만 잠수 할 수 있단 것을 보면 큰바다오리의 적응력이 얼마나 대단할 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바다새들 처럼 큰바다오리도 번식기에는 해안 절벽 위에 둥지를 틀고 번식을 했다.
덩치가 큰 종 답게 번식속도는 느린 편이라 일년의 하나의 알만 낳아 부부가 공동으로 육아를 책임졌음.
성장속도도 느린 편이라 태어난지 7년이 지나야만 번식이 가능했다고 함.
기원전 3만년 전만해도 스페인, 프랑스 북부 등 대부분의 북대서양 지역에서 발견되던 큰부리오리들은 16세기 무렵까지 그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16세기 중반에는 베게용 깃털로 큰바다오리의 깃털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미 대부분의 해안에서 큰바다오리들이 멸종하기 시작했다.
큰바다오리는 인간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인간들을 보면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편이라 사냥하기 매우 쉬운 종이었다고 함.
일반적으로 인간과 같이 진화를 해온 동물들은 인간을 두려워하고 피하는데 큰바다오리의 이런 모습은 매우 독특했음.
게다가 유럽 탐험가들이 북아메리카에 상륙하면서 이 지역의 수백만 마리의 큰바다오리들이 학살당했다.
그 결과 18세기 중반에 대부분의 서식지에서 큰바다오리들이 멸종되었고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이 종에 대한 사냥금지령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큰바다오리의 알, 고기, 깃털을 얻기위한 유럽인들의 남획은 계속되었다.
결국 1820년에는 아이슬란드 앞바다의 가이스플라스케어 섬만이 이 종의 유일한 번식지로 남게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 섬에 화산이 터져 남아 있던 새중 50여마리만이 살아남아 주위의 암초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큰바다오리들은 1844년 6월 3일에 엘데이 섬에서 알을 품고 있던 한 쌍으로 밀렵꾼들은 이들 부부는 박제로 팔기 위해 사냥하고 알은 발로 밟아서 깨버렸다.
마지막 큰바다오리가 이렇게 죽임을 당한 뒤 더 이상 유럽에서는 이 크고 아름다운 새들을 볼 수 없었다.
현재는 80개의 박재와 70여개의 알 껍질만이 남아 이 종이 한때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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