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Чорнобильська катастрофа (우크라니아어)
Авария на Чернобыльской АЭС (러시아어)
Chernobyl disaster
1986년 4월 26일 우크라니아의 키예프 주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이다 현재까지도 국제 원자력 사고중에 독보적으로 많은 방사능이 누출되었으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진 유일한 7등급 사고였다 이 사고로 당시 휘청휘청하던 소련은 5~6년만에 붕괴되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사고라고 볼 수 있는 사고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레 이런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자
무리한 실험
당시 사고가 일어났던 4호기의 제어실 사진이다 현재는 폐허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날 이곳에서 진행했던 실험은
1분도 체 지나지 않아서 사고를 일으켰고 이로 인하여 전무후무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당시 여기서 진행했던 실험은 원자로가 가동이 멈출경우 관성으로 돌던 터빈이만들어내는 전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해줄지를 실험하였는데 일단 가동이 멈춘 상태를 가정해야 하니 발전소는 당시 출력 3200MW를 700MW 까지 낮출려고 하였지만 조작관의 실수로 30MW로 낮춰지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떨어진 출력은 원자로의 균형이 깨지고 원자로에서 중요한 중성자를 흡수하는 제논-135가 쌓이게 된다 이렇게 제논 135가 중성자를 먹어치우니까 당연히 출력은 안올라가고
실험자들은 결국 제어봉을 뽑아서라도 출력을 올리게 되지만 제논이 중성자를 먹어치운 탓에 중심부분엔 중성자가 없고 하단부분에만 불균형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당시 실험자들은 평소라면 쓰지 않을 급수펌프까지 써대면서 출력을 올리기 위해 애를 썼고 수동 제어봉도 원래는 최소 15개는 있어야 했지만 출력을 높히기 위해 6개만 있는 상태였다 당시 실험시엔 안전장치를 끄고 실험을 한다는 내용이 있었기에 안전장치는 당연히 꺼져있었고 이때부터 폭발까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RBMK의 결함
위의 사진은 당시 소련이 쓰던 원자로인 RBMK이다 이 원자로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 RBMK는 구식이라 제어가 좀 힘든 단점이 있다 다른 원자로는 냉각수가 줄면 중성자가 줄어들어 알아서 출력이 줄어들지만 이녀석은 출력이 증가해서 냉각수 문제가 생기게 되면 출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된다..
실험진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험시작 40초도 안되어서 안전장치를 키고 모든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게 된다 이 제어봉은 위에는 붕소가 아래에는 흑연이 있어서 빠진 상태에서는 흑연이 핵 반응을 활성화 시키지만 실험진들이 제어봉을 삽입하였을때 밑에 흡수재 역할을 하던 물을 밀어내게 되서 흡수제인 물이 없어지고 감속제인 흑연이 들어가자
하단에 모여있던 중성자들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폭발적으로 활성화 되었다 참고로 중성자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폭발하는것은 원자폭탄의 원리와 같다.. 원자로를 꺼야 할 안전장치가 오히려 중성자 반응을 올리고 출력을 올리게 된것이다.. 이렇게 중성자는 연쇄반응을 일으키니 당연히 폭주를 하고 내부의 열이 과도하게 올라가자 연료봉이 파괴되어서 그 파편으로 제어봉 삽입이 막히게 되고 달아오른 핵연료와 물이 만나자 증기폭발로 1차 폭발을 일으키게 되고 1차 폭발로 압력용기의 제어부가 터지면서 수증기와 흑연이 반응하게 되고 수소와 일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며 2차 폭발이 일어지게 된다
대폭발
2차폭발 당시 날라갔던 1000톤짜리 반응로 뚜껑 통칭 elena라고 불린다
이렇게 1차폭발은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은색 반응로의 뚜껑을 망가뜨리게 되고 2차 폭발은 이 1000톤이 넘는 반응로 뚜껑을 충격으로 튀어오르게 하며 건물 상층부를 박살내고 안에 있었던 방사능에 절여진 흑연과 건물 잔해를 주변에 흩뿌렸다 폭발 직후 체렌코프 현상으로 인해 발전소 위에 푸른 빛줄기가 레이저처럼 하늘에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거 보겠다고 관광하러 온 사람들도 있다....
이 폭발로 최소 500경 베크렐 최대 1200경베크렐 정도의 엄청난 방사능이 유출되었으며 이게 실감이 안난다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인 리틀보이의 400배 정도 달하는 양이다 그러나 감속재가 불타면서 방사성 물질을 떠 뿜어내면서 더욱 더 피해가 커지게 된다
희생과 수습
위의 사진은 왼쪽부터 당시 선임 연구원이었던 알렉산더 아키모프, 출력을 무리하게 높혀서 폭발을 일으키게 한 아나톨리댜틀로프, 선임 연구원 레오니드 톱튜모프이다 이들은 아직 원자로가 폭발한게 아닌 수소가 폭발한것으로 알아서 제어봉을 삽입하고 냉각수를 공급하려고 하였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 판단으로 피폭을 당하지 않아도 됬던 다수의 직원들이 피폭으로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 아키모프와 톱튜모프도 수동으로 냉각수를 공급하려다가 말도안되는 양의 피폭을 직격탄으로 맞고 정말이지 끔찍한 몰골로 죽게 된다
신고를 받고 온 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방사능 방호복도 없이 진화에 급급하던 대원들도 대부분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이 3호기 원자로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쓰고 이 노력으로 인해 3호기는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3호기까지 터졌으면 현재 우크라니아의 수도인 키예프는 출입금지 되고 민스크나 쿠르스크까지 출입금지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한번 폭발로 50m의 불기등이 치솟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소련은 결국 소련 본국이 직접 사태진압을 하게 된다
소련당국은 헬리콥터를 이용하여 붕소, 돌로마이트, 납, 진흙, 모래 등을 뿌려가며 화재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물을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물을 뿌리게 될 경우 녹아서 뜨거워져있는 핵연료와 만나는 순간 엄청난 열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3호기의 기적적인 생존으로 3호기의 액체질소를 이용하여 겨우 화재진압에 성공하게 된다
처음에는 은폐하려 하였던 소련당국도 어마무시한 양의 방사능을 맛보자 프리피야트의 5만명의 주민들을 하루아침에 대피시키게 되고 프리피야트는 유령도시가 된다 30km 반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고 60만명의 소련 예비군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달려오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열폭발 문제 때문에 첫날에 소방관들이 뿌렸던 물들과 냉각수를 빼내야 하는데 이를 하기 위해선 직접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속으로 잠수하여서 벨브를 열어야 하였다 이때 세명의 영웅들이 나서서 직접 물을 빼게 된다 이들의 결정으로 소련과 흑해 북쪽 동유럽 전체를 방사능으로 부터 구해내었다 이들은 참고로 한분 빼고 아직까지 건강히 살아계시며 우크라니아의 금성 훈장도 수여받게 된다
'바이오 로봇'
이에 대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수습을 위해 로봇이 투입되었다
미국제 로봇은 7분간 작동하다가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방사능에 의해 회로가 타서 멈추었다
일본제 로봇은 9분간 작동하다가 멈추었다
그런데 소련제 로봇은 1시간째 작동중이다 사고 현장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소련제 로봇에 감탄하고 있을때 확성기가 울려 펴졌다
"이바노프 이병! 이제 쉬는 시간이니 나가서 담배 한대 피우고 오시오."
처음에 지휘관들도 사람은 너무 위험하다 판단 로봇을 투입하려 하였다 그들은 독일에게 1000뤤트겐의 방사능을 견딜 수 있는 로봇을 주문하였지만 1000뤤트겐은 프로파간다용 방사능 수치였고 실제는 15000이라 당연히 로봇은 머지않아 고장나게 된다 소련당국은 발전소를 석관으로 덮으려 하였는데 덮기 위해선 2차폭발때 퍼진 흑연 감속재들을 어느정도 치워야지 수습이 가능하기 때문에 달 탐사 로봇을 개조하여서 청소를 하려 하였으나 베터리 문제로 사람이 투입 가능할 정도 까지만 수습을 진행하였다 그 이후는 말 그대로 사람이 하게 되었다
사진의 상태가 좋지 못한 이유는 방사능의 영향 때문이다, 3500명 정도가 투입되었는데 방사능 보호구는 사람에 비해 부족하여서 30kg이 넘는 우의에 납을 끼운 간이 화생방 보호의가 지급되었으나 이마저도 부족하여 돌아가면서 입었다 지붕의 방사능이 엄청나다보니 2분이상 있을시 치사량정도의 방사능을 받게 되었는데 40초로 제한되긴 하였으나 40초 안에 끝내는건 불가능 하였고 대부분 혀에서 쇠맛을 느꼈다고 한다
이 사진은 그 유명한 코끼리 발이라는 사진이다 핵연료 마그마들이 굳어서 만들어진 형태인데 점점 아래로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그로인해 러시아의 식수원인 드네르프 강이 오염될 위기에 처하자 석탄부 장관은 전국의 광부들을 모집하게 되고 아래에 땅굴을 파서 액체 질소 냉각기를 장착하여 식히려고 하였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콘크리트로 그냥 채우게 된다
문제의 4호기를 덮을 석관은 전국에서 만들어져서 도착 후 조립하게 된다 사고가 일어난지 6개월 후인 1986년 10월에 완성되었고 소련군은 방사능에 대한 승리를 자축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완벽히 보호는 불가능 하였고
현재는 이렇게 새로운 석관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는 43~168명의 사망자와 22만에서 83만 정도의 피폭자를 만들어내었다 소련 당국은 사고 후 36시간 후 모두 대피를 명령하여 더 많은 사상자를 막게 되었다 체르노빌 발전소 폭발 사고의 희생자 분들을 기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하겠다 다시는 일어나설 안될 사고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였던 사고였다.
글 봐주셔서 감사하고 유익했으면 추천 한번만 해주세요
'국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대 중국 전략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0) | 2021.05.15 |
---|---|
세계 5대 패권 민족 (2) | 2021.05.12 |
북한 김정은의 취미생활 (0) | 2021.04.30 |
중국 정치계 양대산맥 시진핑과 리커창의 갈등 (0) | 2021.04.28 |
사진한장으로 아직까지 회자되는 미국인 (0) | 2021.04.26 |
- Total
- Today
- Yesterday
- 전쟁
- 주식
- 토렌트 추천
- 프랑스
- 영국
- 토렌트
- 미국
- 코로나
- 토렌트 사이트
- 중국
- 일본
- 광복절
- torrent
- 문제 해결
- 무삭제
- 북한
- 타이완
- 문제해결
- 815
- 호주
- torrent 추천
- 이스라엘
- 8.15
- 러시아
- 가입 필요없는 토렌트 사이트
- torrent 사이트
- 무가입 토렌트
- 대만
- 한국
- 과학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