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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한때 강성한 국력으로 수백년간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패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리베룸 베토(LIBERUM VETO)라는 유사 민주주의의와 분열된 집권층의 폐단이 겹치면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수많은 외적의 침공을 받아 국토가 황폐해지면서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폴란드는 1772년부터 이웃나라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게 영토를 조금씩 빼았기더니 결국 1795년엔 나라가 완전히 멸망 해버렸다.
당연히 폴란드인들은 이를 두고보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1794년, 1830년, 1863년 세차례에 걸쳐 조국을 침략한 외적(주로 러시아)에 대항해 전국민적인 봉기를 일으키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나폴레옹 전쟁기에는 아예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바르샤바 공국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저항들은 세 열강의 탄압과 바다 건너 프랑스, 영국같은 다른 열강들의 외면 속에 점차 쓰러져 갔다.
1863년 1월 봉기가 진압되자, 열강들은 폴란드인들에게 독립의 여지를 조금도 줘선 안된다고 결정내렸다.
그리하여 명목상으로나마 남아있던 폴란드 입헌왕국이 1867년 러시아에 흡수되면서 지도상에서 폴란드라는 이름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1세기 가까이 이어진 침략과 국권침탈은 폴란드인들의 마음 속에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됐다.
그러다 보니 폴란드인들에게는 어떠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들은 이 분노와 슬픔, 후회, 고통이 한데 섞인 이 감정을 Żal(잘)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들이 겪어온 오랜 고통의 시간이 마음속에 어떤 울분을 만들었고 그것은 Żal이 되었다.
Żal은 매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단어로, 당시 유럽 국가들의 언어로는 번역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우울한 단어가 많기로 유명한 옆나라 독일조차 이 Żal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역시 평생에 걸쳐 이 Żal이라는 감정을 안고 살았다.
음악적 성공을 위해 1829년 고향 바르샤바를 떠나 빈으로 가게 된 쇼팽은 이후 살아생전 다시는 폴란드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평생토록 조국의 흙이 담긴 유리병 하나를 간직하며 향수를 달랬다.
쇼팽은 자신의 애국심을 음악으로 녹여냈다.
그의 대표곡인 마주르카, 폴로네즈에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심오한 슬픔이 녹아들어 있었다.
외국인들은 항상 무언가 우울해보이는 쇼팽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절친이자 똑같이 나라가 오스트리아에게 점령 당해있던 헝가리 출신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만이 쇼팽의 감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해줬다.
“쇼팽은 일시적으로 기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근저에 있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말은 폴란드어 Żal 외에는 없다. 진정 모든 쇼팽의 음악을 물들인 것은 Żal이었다.”
비단 쇼팽뿐만이 아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쿠오바디스'로 유명한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류 과학자 마리 퀴리(Maria Skłodowska-Curie) 같이 근대 폴란드를 대표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모두 가슴 속에 Żal을 품고 있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폴란드의 민족시인이라 불리우는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의 조상의 황혼(Dziady)이라는 시가 있습니다만, 나중에 다뤄보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제국 모두 멸망한 1919년, 폴란드는 비로소 조국을 재건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잠시,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 직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이라는 반쪽짜리 국가로 또 다시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을 압제 속에 보내야만 했다.
폴란드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세대부터 걸쳐 내려온 어찌 할 수 없는 체념적인 운명 속에서 Żal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표출했다.
폴란드에게 비로소 실질적인 자유가 찾아 온 것은 1990년, 소련이 해체되고 폴란드가 민주화 된 후의 일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같은 유럽인들조차 이해 못하는 폴란드의 Żal을 2만 리(里)나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이상하게도 매우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정서인 한(恨)이 Żal과 거의 모든 면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시각화 하기 어렵고 대신 음악이나 글을 통해 표현하기 쉽다는 점도 비슷하다.
인간의 감정은 지리와 민족과 종교를 초월하기 때문일까?
위에서부터 재와 다이아몬드(Ashes and Diamonds, 1958), 이다(Ida, 2013), 콜드워(cold war, 2018)
폴란드와 한국이 공식으로 국교를 수립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양국의 문화적 교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양국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와 역사의 공통점이 많음에도 이를 어렷풋이나마 알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Żal이라는 정서를 느껴보고 싶다면 폴란드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한국어로 제일 많이 번역된 폴란드어 매체가 바로 영화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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