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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

이싸빅 2022. 9. 14. 11:55

1. 베트남에서 공산주의를 피해 자유를 찾아 탈출했다는 보트피플들이 있었음.

2. 1980년, 한 해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르는 베트남 보트피플들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함.

3. 실제 탈출한 사람들은 훨씬 많은 숫자였을 것으로 추정됨.

​4.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적화되자 베트남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 것으로 보트피플이 보도되었지만, 사실은 좀 달랐음.

5. 그 당시 베트남에는 150만 명 이상의 화교가 살고 있었고, 베트남 주요 대기업 CEO의 80% 정도가 화교 일정도로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었음.

6. 1979년 미군 철수 후 북베트남(월맹)이 남베트남(월남)을 점령하자 북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에 있던 화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을 함.

7. 재산을 빼앗기기 싫은 화교들이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가지고 배를 구해 떠나 보트피플이 자유를 찾아 떠난 베트남인보다 많았음.

8. 월맹이 두려워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음.

9. 중국은 미국과 월맹이 붙은 베트남전쟁에서 월맹을 몰래 지원함.

10. 월맹 간부들을 군사교육했고, 군사고문단 등으로 직접 참전해서 중국군 수천 명이 베트남에서 전사하였음.

11. 도와준 것 자체는 고맙지만, 도와줬다는 명분으로 중국이 베트남에 들어와, 베트남 내 화교들을 기반으로 눌러앉는 사태를 월맹은 걱정을 함.

12. 월맹은 베트남을 통일한 후 러시아와 친교를 강화하면서, 베트남 내 화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을 한 것임.

13. 중국은 실컷 지원해 줬는데, 통일을 하고 나자 안면을 싹 바꾸며 베트남 내 화교들을 쫓아내고, 러시아에 붙으려고 하는 월맹에 격노함.

14. 1979년 2월 17일 중국은 10개 군단, 30개 사단, 탱크 수천 대와 30만 명의 병력으로 베트남을 침공함.

15. 그해 1월 1일 미국을 처음 방문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다음 달이었음.

16. “ 조그마한 친구가 말을 안 듣는다. 아무래도 엉덩이를 좀 때려줘야겠다. “

17. 이때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광풍이 지난 후였음.

18. 중국은 한국전쟁을 하며 경험 많은 장군과 간부들을 다수 보유했으나,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장군과 간부 군인들이 반동분자로 대거 숙청을 당한 상태였던 것임.

19. 베트남의 주력군은 수도가 있는 남쪽에 있고, 중국과 붙어있는 북쪽은 텅 비다시피 한 상태에서 30만 중국군이 밀고 내려옴.

20. 30만 중국 정규군을 베트남은 2개 사단의 정규군 2만 명과 18만 명 정도 되는 민병대가 상대를 함.

21. 병력 차이가 워낙 나서 상대가 안 될듯했지만, 그 민병대는 보통 민병대가 아니었음.

22. 베트남의 민병대들은 월맹전에 참전 후 제대해서 군인 물이 안 빠진 향토예비군들이었고, 미군과 게릴라전을 펼친 역전의 용사들이었음.

23.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련 및 중국이 지원한 중화기도 충분한데다, 평지가 별로 없이 밀림이 울창한 지형을 이용해 민병대들은 게릴라전을 펼치며 중국군을 소모시킴.


24. 개전 첫날 중국 전차 13대가 파괴되고, 항공기 15대가 격추되었으며, 한 달도 안 돼서 중국군 62,500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탱크, 대포 등이 파괴됨.

25. 베트남은 민간인 포함해서 7만 명 정도가 사망한 바, 30만 정규군이 2만 정규군과 18만 민병대를 상대한 것을 감안하면 중국이 졸전을 펼친 것임.

26. 남부의 베트남군 주력이 전투 준비를 마치고 전장이 있는 북부로 올라오는 징후까지 보이기 시작함.

27. 2월 17일에 베트남을 침공한 중국은 남부에서 올라오던 베트남 정규군과 제대로 붙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침공 한 달도 안 된 3월 16일, "베트남에 대한 군사적 징벌을 완료하였다"라며 철수 발표를 하고는 일방적으로 군대를 철수해버림.

28. 1979년판 원조급 정신승리였음.

29. 이때 북한이 중국 편을 들어서 베트남이 북한을 싫어하기 시작함.

30. 2011년 5월. 난사군도의 해저 가스 개발과 관련해 중국과 베트남 분쟁이 다시 발생함.

31. 베트남 자원 조사선이 난사군도에서 작업 도중 중국 해양순시선의 방해로 해양 케이블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함.

32. 가만히 있을 베트남이 아님. 베트남은 6월 12일 전쟁에 대비한 동원령에 총리가 서명함.

33. 그리고 중국이 자꾸 이러면 베트남에 미국 항공모함의 기항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이 물러섬.

34. 2014년 5월 2일에도 사건이 하나 터짐.

35. 고출력 예인선들로 구성된 선단이 중국의 대형 시추선 한 척을 끌고 운행을 시작했고, 이 배는 베트남 동쪽으로 193킬로, 중국 하이난섬 남쪽으로 290킬로 지점에 도착함.

36. HD-981이라는 이 시추선은 높이가 건물 40층에 달하는 초대형 원유시추선으로 해저 3킬로 이상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배였음.

37. 80척에 달하는 다른 배들과 항공기의 호위를 받으며 HD-981이 나타나자, 베트남 정부는 30척의 선박을 출동시켜 진로를 가로막음.

38. 중국과 베트남이 모두 자기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해역이었음.

39. 중국은 고출력의 물 대포를 쏴대며 베트남 선박들을 막았는데, 베트남 선박 1척이 격침되기도 함.

40 베트남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옴.

41. 거리에 몰려나온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에 있는 중국 공장과 사무실에 불을 질렀고, 중국인들을 폭행하며 사상자가 생기기 시작함.

42. 베트남 거주 중국인 7천 명은 긴급하게 중국으로 대피를 했고, HD-981은 해역에서 사라짐.

43. 중국은 베트남 사람들의 중국인과 중국 기업에 대한 폭력에 당황했고, 외교관들의 협상 없이 바로 행동으로 들어가 국민들의 여론을 자극할 수 있는 돌발행동을 피하겠다고 약속을 함.

44. 비록 기름은 발견 못하고 있지만, 중국 시추선을 내쫓은 해당 해역에서는 베트남이 시추를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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