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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사전적 의미

설날의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중 하나이다.​

 

1. 의 뜻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루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옛 기록들에 의하면 원일(元日) · 원단(元旦) · 원정(元正) · 원신(元新) · 원조(元朝) · 정조(正朝) · 세수(歲首) · 세초(歲初) · 연두(年頭) · 연수(年首) · 연시(年始)라고도 하는데 이는 대개 한 해의 첫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니 만큼,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명절을 맞았다.
설날은 우리나라 세시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크게 즐기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복되고 탈 없는 한 해를 기원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행해진다.

2. 의 유래

‘설’이란 새로 시작되는 날이라 ‘설다’, ‘낯설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의 기준은 역법의 존재와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양력설/음력설

양력사용하게 되면서 음력설이 사라졌던적이 있다.
한민족이 양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부터다.
음력 1895년 11월 17일이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이라고 고종황제가 칙령으로 선포했다.
잃어버린 설날을 1985년 전두환 정권 때 ‘민속의 날’ 이라는 이름으로 되찾아 공휴일로 지정하여 91년 만에 설날(음력설)이 부활되었다.
그러다가 1989년 노태우 정권 때 설날로 다시 개명하여 3일 동안 휴무토록 규정하였다.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이런 수난을 겪고 원상태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 때 신정설(양력)을 강제적으로 지내게 하였지만 완강히 국민정서 때문에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력설을 일본설로 취급해 외면했던 것이다.
이승만정부는 신정설을 고집했으나 서민들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족정신과 전통이 이렇게 무서웠던 것이다.

 

4. 섣달 그믐

섣달그믐, 즉 정월 초하루가 되기 전 차례 준비를 모두 맞추어 놓고 재계를 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우리나라의 전통 풍속에 의하면, 12월 말일을 '섣달 그믐'이라고 했다.
이 날은 한 해의 마침으로서 연중의 거래 관계는 이 날에 청산을 하며, 각 가정에서는 새해의 준비와 연중 거래의 주고받는 일로 분주했던 날이었다.
밤중까지도 빚을 받으러 다니는 이도 있으나, 자정이 지나기만 하면 정월 대보름날까지는 독촉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또한 섣달 그믐날 대개 중류 이상의 집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고, 연소자는 존속의 친척, 또는 친지간의 장로(長老)를 두루 찾아뵈니, 이를 '묵은해 새배'라고 했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자제 부녀들이 모두 집안의 어른들께 묵은해 세배를 드리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의 '설날'도 중히 여겼지만,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 그믐날도 중히 여겨온 것을 이러한 풍습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예전과 같은 풍습은 요즘 별로 지켜지지 않지만, 지금도 섣달 그믐을 '설날'에 대비하여 '작은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설날의 풍속

어른들은 설날 아침에 설비음 위에 예복을 차려 입고, 사당이나 대청에서 4대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차례로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성묘를 하고 돌아온다.
설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차례를 지낸 다음에 음복으로 함께 모여 비로소 떡국을 먹는다.
차례 제사는 쇠고기를 넣어 만든 만두와 떡을 넣은 떡만두국 혹은 떡국을 끓여 놓고 지낸다.
이외에 탕·적·전·나물[진채]·포·식혜·과줄·과일 등을 놓는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나이가 삼재에 드는 사람들은 3마리의 매를 그린 부적을 문설주에 붙인다고 하였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의 어른들께나 친구끼리도 서로 집으로 찾아 가서 세배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德談)이라고 하는데 덕담의 표현은 시제를 항상 과거형으로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덕담의 형식이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축원으로 변하였다.
차례가 끝나면 세배와 덕담이 이어졌고, 그 후 음복 식사를 한다. 떡국은 나이만큼 먹기도 하였다.
그 후에 조상 묘가 있는 선산에 가서 성묘를 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친척 및 동네 어른께 세배를 올리려고 마을을 돌기도 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오며,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하는 음식을 세찬(歲饌), 그리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6. 설음식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햇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준비는 가세에 따라 가지 수와 양이 다르지만 정성을 다해 만들며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대표 음식은 떡국이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이 설을 쇠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설 전에 어른들께 귀한 음식을 보내는 일,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보내는 먹을 것들도 세찬이라고 하였다.
그때 보내는 음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표적인 것은 쌀, 술, 담배, 어물(魚物), 고기류, 꿩, 달걀, 곶감, 김 등이었다.

7. 덕담

어른들은 세배 후 덕담을 해준다.
우리조상들은 말 한 마디에도 신비한 주술력, 도덕, 영력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의 마음부터 조상의 슬기로운 지혜를 알고 실천해야 된다고 보고 덕담을 하는 것이다.

​8. 세뱃돈

설날하면 세배 돈을  연상한다.
이날은 액(厄)과 결별하는 민속이 많은데 제웅이라는 게 있다.
짚으로 만든 인형에 불행을 담아 섣달 그믐날 길바닥에 던져두는데 걸인이나 아이들로 하여금 주어가게 하고자 짚 인형 뱃속에 동전을 담아 던져둔다.
그렇게 해서 불행이 옮겨갈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아이들은 당장 돈 욕심이 우선되기에 버려진 제웅을 줍지 못하도록 하고자 주기 시작한 것이 세뱃돈이라고 한다.

9. 떡국

설날 차례 음식은 떡국이다.
흰떡은 밝음을 숭상하는 백의민족과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떡국의 떡이 둥근 것도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동국세기>에 의하면 떡국은 흰떡에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함께 끓인다고 기록되어있다.
최근에는 꿩고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신 닭을 이용하기도 한다.
민요곡에 ‘떡 사오, ’떡 사려‘ 로 시작되는 떡 타령에 정월달에서 섣달까지 명절 떡이 달떡으로 나온다.
일본에서도 흰떡을 모치라 하는데 미치쓰키(滿月) 모치쓰키(望月) 라고 하듯이 한국과 같은 달떡이다.
일본에서도 각종 제사 때 신전에 올리는 떡을 ‘사도기’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시덕(함경도),시더구(평안도),시더기(강원도) 라 했으므로 미루어 같은 어원의 제사 음식이라 본다.
흰떡을 잘라 먹는다 해서 인절미(引切米)라 했음도 떡이 공식(共食) 음식임을 입증 된 것이다. 한집안 식구끼리 한솥밥 먹고 한직장끼리 큰 한술잔으로 둘러 마심으로 일심동체를 다지듯이 끈적끈적 둘러붙은 흰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마음이 돼 친화력을 길렀던 것이다.

인절미의 동질화 정신을 살리고 먹기 편하게 만든 것이 떡국이다.
달떡을 가래로 길게 빼어먹음으로 오복중의 으뜸인 축수(祝壽)를 가중시킨 것이다.
떡가래를 장명루(長命縷)라 불렀음도 이 때문이다.
설날 아침떡국은 그저 먹으면 한 살 더 먹는 것이 아니라 이화력을  동화력으로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수렴하는 정신음식인 것이다.

10. 까치와 설날

까치설날은 설날의 전날이다.
‘까치’에 ‘앞’이라는 뜻이 없는데도
까치설날은 설 전날을 뜻하는 말이 됐다.
우리 민족은 까치를 길조로 생각해 왔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도 까치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이야기나 설화에서도 까치가 설날을 쇤다거나, 까치설날이 1월 1일의 전날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동요에서 말하는 '까치설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17세기 말에 이루어진 어휘집인 ≪역어유해(譯語類解)≫라는 문헌에는 그 어휘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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