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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말로도 좋은 소리 못듣는 날씨

영국의 평균 일조시간은 연 1,334시간이다. 한국은 동기간 2,501시간인걸 비교하면 그냥 해가 잘 안뜨는 곳이다.
매일 우중충하게 끼어있는 구름, 이걸 우산을 써야할까 그냥 갈까 애매하게 오는 비 
이러니 과일과 채소가 다양하게 자라기 힘들다. 향신료의 원재료도 부족할 수 밖에
 

 

 

2. 하필 끼고 있는 바다가 북해

북해는 춥기도 엄청 추운데다 파도 꼬라지가 저런 곳이다. 
이 바다는 로마시대때부터 악명이 높았음.
어느정도냐면 2차대전기 랜드리스 넣어주려고 항해할때마다 파도가 치면 겨울철엔 이게 얼어버렸다고
전근대 기술로 여기서 물고기 잡아오라고 하면 용왕님께 정기적으로 인신공양 하러 가는 꼴이다. 
 
 
 

 

 

3. 올리버 크롬웰
 
이 양반이 좀 심하게 금욕주의적 청교도였다.
근데 왕의 목을 따고 독재정치를 할 시절에 그 엄격한 규율을 전 영국인에게 강요했다.
맛난걸 먹는거도 신께 죄를 짓는거라고 통제해댔는데 요리가 남아날리가
 
 
 
 
 
 
 
 
 

4. 빅토리아 시대

앞선 이유는 전근대시대까지 이야기.
그런데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땐 인도부터 해서 온갖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점령했다. 그리고 크롬웰의 지배는 10년도 가지 못했지.
그런데 영국요리에 사형을 내린건 빅토리아 시대와 산업혁명이 결정타였다.
 
 
 

산업혁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전개되었는데, 이때 지방 빈농 출신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당시 공장주들은 복지는 고사하고 노동자들에게 숨 쉴 시간을 주는거도 싫어했다.

굴리면 어쨌든 생산품이 나오는데 왜 쉬게해주냐 하는 마인드

 

그 덕에 당시 하루 노동시간은...

쉬는 시간 없이 하루 10시간 근무는 기본이고, 12시간에서 최대 20시간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함.

거기다 노동연령의 하한선? 굴뚝청소 시키고 탄광에서 작은 구멍 팔때는 덩치 작은 애들이 최고라고 할 시절이다.

 

생존을 위한 수면시간 약간을 제외하면 노동에 모든 시간을 쓰게됨.

이러다 보니 식사는 그저 일을 하기 위한 열량 섭취란 1차원적 목적으로 인식되며 맛이나 플레이팅같은 배부른 소리는 나올 수 없게된다.

 

또한 상술했듯이 만 9~18세의 미성년자들도 노동현장에 투입되었는데, 이들은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자리잡지 못한 상황.
 


마침 목화에서 짜낸 값싼 면실유가 남아돌던 상황

피쉬 앤 칩스, 이 요리가 유행하게 될 제반환경이 갖추어짐

 

당시는 냉장•냉동기술이 보급되기 전이라 식재료의 신선도를 보장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약간 상한 음식이라도 일단 튀기기만 하면 일단 이상한 냄새를 가릴 수 있고, 약간이나마 세균도 죽었으며(그땐 알지 못했겠지만), 일단 튀기면 신발도 입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균일한 맛도 보장되었지.

감자야 넘쳐나던 시절이고 생선도 질이 보장되지 않는 물건은 흔했다. 애당초 빵에 분필가루 타던 시대인데...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주머니도 가벼운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피쉬 앤 칩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

반대급부로 영국 농촌에서 먹던 전통적 요리들의 맥이 끊기는 소리였지. 

현재 영국요리에서 지적되는 문제점인 고급요리와 값싸게 배채울 스낵류는 있는데 왜 중간층 요리는 전멸했냐가 여기서 나온 문제. 이 끊기는 소리였지. 

여기에 더불어 산혁 이전에도 유행하던 '진'.

1페니면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죽을만큼 마실 수 있다던 당시의 유행어처럼 값싼 진은 산혁기때 영국 당국의 골머리를 썩게했다. 런던 하층민들이 하도 진을 퍼마셔서 불임과 조기사망율이 높아졌거든

그나마 전통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은 값싼 진을 마시고 일찍 죽어서 음식문화를 남겨 줄 시간조차 없어진 것.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노동자층의 음식은 이렇게 전멸했다쳐도 부르주아 계층, 그리고 영국의 전통적 귀족들은 뭐했나?

일단 부르주아 계층.
돈은 있다. 그러니 원한다면 나름 괜찮은 요리를 시도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양반들이 속된말로 배가 불러버리자 스노비즘을 부리기 시작했다.
 

귀족 계급 못지 않게 주머니가 빵빵해진 중산층들은 귀족의 복장과 행동거지를 따라하기 시작하였지.

 

이때 자신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메이드를 고용하는 것이 사회현상 수준으로 대유행함. 

 

메이드 중에는 어느 정도의 가사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하층민 중에서 얼굴만 보고 뽑아온 사람이 많았다. 

빅토리아 시대때 위선=> 피아노 다리도 음란하다고 커버씌우며 도덕을 이야기하던 자들이 뒤에선 딸뻘, 심하면 손녀뻘 메이드를 건드려서 사생아를 임신시킨다는 거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메이드로 고용되는 사람들 상당수는 집에 입이라도 덜기위해 보내진 도시 빈민들의 자식들. 

이들은 배채우는 것 이상의 요리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그저 하던대로, 혹은 그냥 시키는 대로 요리만 답습했다.

그러니 중산층의 요리도 큰 발전을 하지 못함
 
 
마지막으로 전통적 귀족들.

이들의 식사는 하루 2~3끼, 저녁 식사 같은 경우는 6~9 코스의 요리가 나오는 것이 기본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니 프랑스 요리사, 이탈리아 요리사, 인도 요리사들을 고용할 수도 있었지.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의 식사는 하나의 거대한 고문실과 같았어

 

학대와 마조히즘에 가까운 식사 예절. 

금욕을 위해 일부러 상한 음식을 먹이고 누린내 나는 고기를 향신료 없이 먹이는 것은 기본.

애가 맛이 없어서 금식투쟁 하면 어쩌냐고? 매일 그거만 주면 언젠가 지가 배고파서 먹을거다 메타였다.

 

식사 시간에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스푼을 뜰 때의 포즈, 입에서 음식을 씹는 시간, 요리를 먹는 순서 같은 게 숨막힐 정도로 지정되어 있었지.

 

여기에다 외국인 요리사의 출신지 식사 예절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이 숨막히는 식사 문화에 추가하는 것은 덤.

 2~3시간이 넘는 식사 시간은 지켜야 할 것 천지였고, 이를 어길 시 무자비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지.



상황이 이따위니 상류층도 식사시간을 꺼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티타임때 과식을 하게 되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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